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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0건 조회 5,401회 작성일 08-01-3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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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가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강아지를 사달랬다.

집 안에서 개를 키워본 세대도 아니였고 개와 연결된 과거의 기억이
덧나기 않기를 바래서 반대하였다.
요즘 가장이라야 허울 뿐이고 결국 애엄마와 딸은 어느날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요크셔 테리어 종이였다. 前 주인은 이민을 떠났다.
잔 정을 주지 않으려고 처음에 무심히 대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나는 개 당번이 되어 있었다.
또 나를 따르기에 한 순간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내려 갔는지도 모르겠다.
딸애가 중학생이 될 무렵, 그에게 흰 수염이 어느듯 돋아났다.
일년이 지나자 침침해진 근시가 더 심해지는지 산책을 나가다보면
낯선 바지가랑이를 보면 꼬리를 치고 아는 척 하다가 돌연히 냄새를
맡고서 아니라는 걸 아는 황망한 주책도 부렸다.
기력이 쇠잔해지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
살금살금 다가가 놀래주면 그를 속여 넘기는 경우가 생겨났다.
예전이라면 그의 영민한 귀와 감각을 통과하지 못했었다.
간혹 사라진 그를 찾다보면 나의 서류 가방 안에 들어가
불편하게 웅크리며 들어가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집착이다.
침대에 누워 이름을 부르면 쏜살 처럼 달려와 코를 부비며 아는 척
하던 놈이 요즘 침대에 펄쩍 뛰어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서 몇 번이나
뒤로 앞으로 잰 걸음의 발돋음을 해야 힘겹게 올라왔다.
아기 같았던 딸애는 지금 그의 엄마처럼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힌다.
사람 나이로 치면 할아버지이지만 마치 아기처럼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의 유년, 사춘기, 장년기가 어느덧 흘러가 벌써 노화 과정을 본다.
몇 년이 더 지나면 손수 땅에 그를 묻어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늙어 간다. 진행이 그 보다 좀 더디고 서서히 흘러갈 뿐이다.
눈을 반쯤 게슴츠레 감고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쨌든 우리 둘은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제밤 문득, 어쩌면 딸애의 선물을 내가 대신 받지 않았설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태어나고 자라 병을 앓고 죽어가는 것. 그것을 압축하여 나에게 보여주고 있다.
생로병사라는 선물, 그 순환 사이에서 스쳐지나 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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